
은정아 Jenna Eun
전시 소개
피아니스트,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로 활동해 오고 있는 은정아(Jenna Eun)의 개인전. 2026년 연수예술지원사업 시각 부문 선정작으로, 인터랙티브 사운드 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hearin’ inhere in here”는 “듣기가 여기 깃들어 있다”, “듣기가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던지고자 하는 중요한 질문은, 소음과 음악의 경계는 어디인가, 기술이 우리의 듣기 경험과 창작 경험을 정말 향상시켰는가, 하는 것입니다.
음향학자 R. 머레이 셰이퍼는 일찍이 사운드마크(soundmark)라는 개념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는 랜드마크(landmark)에서 파생된 말로, 랜드마크가 시각적으로 그 장소를 대표하는 지표가 되듯이 사운드마크는 청각적으로 그 장소나 공동체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교회 종탑의 소리, 특정 항구에서 들을 수 있는 독특한 경적의 소리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함께 들음의 공동체적 경험, 귀를 열어두고 공간과 주변 존재를 섬세하게 인지할 수 있는 경험들이 와해되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기계와 사람과 자연이 빽빽이 밀집되어 각자 소리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귀가 이미 피로해지자 소음과 소음 아닌 것의 경계가 옅어지고, 소음의 범주는 무자비하게 넓어집니다. 시끄러운 세계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또 다른 소음을 만들어 버리거나 귀를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개인들이 TV, 라디오, 스피커, 심지어 이제는 두개골에 대는 벽이나 다름없는 헤드폰, 이어폰 등 각자의 청취 장치를 가질 수 있게 됨에 따라, 온갖 종류의 소리와 음악들은 소음 가득한 도시 속에서 다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듣는” 방어적 수단으로 전락하기까지 합니다.
소리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해줘야 하는 음악가조차도 세상에 어떤 소리들이 있는지를 잊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들마저 소음을 피하기 급급해, 혹은 소음 민원에 시달려, 창문을 꼭 닫고 귀를 꼭 막습니다. 그렇게 닫힌 창작의 방에 기계가 들어온 지금, 질문들은 한층 더 복잡해집니다. 이제는 기계도 소음과 음악을 판단하며, 무질서 속에서 무언가를 길어 내어 만들 수 있기까지 합니다. 그 점은 우리와 닮은 듯도 하고,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매끄럽다는 점에서는 어느 순간 우리보다 나아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듣고 만드는지 우리는 스스로 물어 볼 수는 있겠습니다. 혹은 그 매끄러움이 닿지 못하는 곳, 즉흥성과 의도된 흠으로 돌아가 볼 수도 있겠습니다.
듣는 이도 만드는 이도, 이제 그 경계 앞에 함께 서 있습니다. 기술과 자극과 소음과 소리가 혼재하고 범람하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듣지 않고 있는지,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또 기술에 기대어 스피커와 헤드폰으로 출력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라건대 이곳을 나가서 더 많은 살아 있는 것을 들으시기를.)

